집이란 쉼터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공간이다. 오래된 집은 오래된 사람처럼 편안하다. 그러나 익숙해지다 보니 문제조차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처음 이사 왔을 때는 '누가 우리 집에 안 오나', '집 구경 올 사람 없나?'하고 은근히 방문객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 집에 산 지 이십 년이 가까워지자 상황이 달랐다. 그 당시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싶었던 새집도 헌 집이 되고 가구도 낡고, 무엇보다도 지저분한 것은 벽지였다.
천장이며 벽지의 무늬가 다 닳아지고 누리끼리하게 빛바래고 손때까지 묻어 누추하기 짝이 없는 우리 집에 누가 불시에 들이닥칠까 늘 불안했다.
버리는 일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사들인 물건들로 해가 갈수록 살림은 늘어나 집안은 포화상태이다. 누가 보더라도 금방 이사할 집 같다.
남의 집에 놀러 갔다가 오면 우리 집이 마치 가축들의 우리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치워보겠다고 이곳저곳 손을 대보지만 턱없이 많은 살림들로 대책이 안 섰다.
도배하고, 있는 살림 정리하면 해결이 될 것도 같은데, 살림 옮기고 도배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방법은 이사였지만 아이들 학교가 가까워 아직은 아니다.
인터넷 검색하다 우연히 황토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이트에 들어가 액상황토액 두 통을 구입했다.
벽지 위에 직접 바르는 거라 황토 칠은 간단했다. 남편은 제대로 황토가 먹힐까 의심스러워했다. 남편이 외출했을 때 우선 주방의 천장과 벽에 붉은 황토를 칠했다. 덩치 큰 냉장고도 요령 있게 힘을 썼더니 바퀴가 달려 어렵지 않게 움직일 수 있었다.
벽과 틈만 생기면 롤러를 밀어 넣어 칠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일이 즐거웠다. 흙냄새가 좋았고, 그 속의 목초액이 섞여 약간의 연기냄새가 향토적이고 촌스러워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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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순아 |
| 남편이 귀가하여 깜짝 놀랐다. 의외로 괜찮다는 것이었다. 남편의 감탄 섞인 반응에 힘을 얻었다. 남편이 부재중일 때마다 거실과 작은방 앞뒤 베란다마저 마술 부리듯 해치웠다. 아이들은 토굴 같다며 이색적이고 파격적인 집안 내부 변화에 재미있어 했다.
헌 집에 황토 칠은 환경 친화적이어서 환경 호르몬이나 새집증후군으로부터 안전하다. 황토를 다 칠하고 나니 커튼이 눈에 거슬렸다. 낡은 커튼이라 버리면 버리리라는 생각으로 황토액을 찍어 큼직큼직하게 꽃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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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붉은 황토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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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순아 |
| 오래되어 삭아지는 헌 커튼이 화학섬유라 황토액이 잘 먹히지 않았다. 신문지 깔아놓고 반복해서 덧칠했다.
귀가하여 놀랄 남편의 황토 빛 얼굴을 떠올리며 밤이 깊도록 꽃 그림을 그려 커튼을 다림질하여 창문에 달았다.
붉은 황토방에 핀 붉은 황토 꽃이 보기에 좋았다.
밤늦게 들어온 남편은 탄성을 질렀다. 밤에 불을 끄고 방에 누워서 바라보면 가로등 불빛에 황토 꽃이 비쳐 색다른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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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토로 그린 꽃그림이 있는 커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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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순아 |
| 이사하지 않아도 이사한 기분이다. 쓸데없는 물건들을 내다버리고 나니 집안이 훤했다.
붉은 황토빛 거실에 앉아 있으면 이곳이 흙냄새 나는 전원이다. 비치는 햇살에 따라 황토색이 달랐다. 황토가 이렇게 부드럽고 아름다운 색인 줄 미처 몰랐다. |
| 2007-07-10 20:56 |
| ⓒ 2007 OhmyNews |
배순아 고객님 감사드리고요
시간되시면 이미지 선명한 사진(디카로 찍은)부탁드립니다.
통화하고난후 그냥 있기는 아까워서 이렇게
게시판에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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